튀르키예 커피 문화
목차
  • 추천사 7
  • 서문 19
  • I. 예멘에서 이스탄불까지 24
  • II. 커피와 신비주의 33
  • III. 커피는 핑계일뿐 43
  • IV. 타흐미샤네 55
  • V. 생명의 물 61
  • VI. 절구에서 컵까지 66
  • VII. 커피 컵 81
  • VIII. 궁전의 커피 세리머니 89
  • IX. 오스만 저택의 커피 서비스 100
  • X. 가정 생활의 커피 106
  • XI. 커피 중독 114
  • XII. 화로와 애쉬 커피 128
  • XIII. 커피 부족 136
  • XIV. 커피 컵에 담긴 운세 147
  • XV. 옛 이스탄불의 커피하우스 광경 161
  • XVI. 지역 커피하우스 173
  • XVII. 크라아트하네 184
  • XVIII. 커피하우스에서의 엔터테인먼트 194
  • XIX. 문예 커피하우스 208
  • XX. 커피에서 차로 218
  • 옮긴이 후기 226
  • 참고 문헌 231
서문
취하게 하는 냄새, 감미로운 맛, 그리고 흥분 및 탈진 방지 같은 보완적인 특성이 이 성공의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커피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놀라운 기술을 가지고 있다. p. 21

당시 오스만 정부 당국을 곤혹스럽게 했던 것은 커피하우스와 같은 커피가 소비될 수 있는 장소에서 일어난 논의였다. p. 21

커피를 폐지하라는 법령을 내린 사람들도 어쩌면 큰 컵에 쓴 커피를 마시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금지 사항을 준수하고 커피를 전면 금지하는 데 성공하기란 불가능했다. 커피는 이미 궁전에 들어왔고, 말하자면 내부에서 안전한 은신처를 정복하면서 의전에서 그 자리를 차지했다. p. 21

커피를 음료로 금지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때쯤에는 피 대신 커피가 사람들의 혈관 속을 돌고 있었다. p. 21

보통 튀르키예인들은 아침 식사를 뜻하는 튀르키예어 "Kahvaltı(카흐발트)"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즉 "커피를 마시기 전(Kahve-altı, before coffee)”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튀르키예인들은 아침 식사를 한다고 하기보다는 단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아침에 간단히 음식을 먹었다. p. 21
튀르키예 커피 문화
Gün yetmedi taştıkça taşan neşvemize
imrendi o gün kahvede kim varsa bize
"Dostlarla’ dedim, ‘sohbetimiz bal gibidir
ey kahveci gel katma şeker kahvemize!"


우리의 넘치는 기쁨에는 하루가 부족해
그날 커피하우스에 있던 우리를 부러워해
“친구들과 대화는 꿀 같아
오 커피메이커여, 이리 와서 우리 커피에 설탕을 넣어라!”
예멘에서 이스탄불까지
하프즈 휘세이인 아이반사라이(Hafız Hüseyin Ayvansarayî)의 저서 『메즈무아-이 테바리흐(Mecmua-i Tevârih)』에서 언급된 ‘커피하우스 엔터테인먼트(Kahvehane mahall-i eğlence)’(959) 구절은 1551-1552년을 이스탄불에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연 날짜로 지정하는 것에 반해, 에스마뤼트-테바리흐(Esmarü't-Tevarih)에 인용된 ‘주후르-으 카흐베 베 디야르-으 룸(Zuhûr-ı kahve be diyâr-ı Rûm)’ (962)이라는 구절은 1554년을 가리킨다. p. 25

커피가 아비시니아(현재의 에티오피아)에서 유래한 식물로서, 커피를 음료로 마시는 것이 신비주의자들 사이에서 대중화되었지만, 커피는 예멘에서 이슬람 세계로 퍼졌다는 것이다. 일부 애호가(시인들)에게 ‘예멘의 어두운 아름다움’으로 간주되는 커피는 우아한 수수께끼에서 ‘예멘의 신사’로 등장한다:

  • Ben ne idim ne idim / 난 뭐였지, 난 뭐였지?
  • Yemenli bir beğ idim / 예멘의 신사
  • Felek beni şaşırttı / 운명이 날 혼란스럽게 했고
  • Fağfuriye düşürttü / 도자기에 나를 빠뜨렸다 p. 31
튀르키예 커피 문화
커피와 신비주의
튀르키예 커피 문화
커피라는 단어가 포도주를 의미하기도 하고, 그것이 마치 포도주처럼 같은 컵으로 돌려 마신다는 사실은 에부수우드 에펜디와 다른 종교 학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p. 34
커피는 핑계일 뿐
튀르키예 커피 문화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을 당시 13-14세의 소년이었던, 갈리폴리에서 온 무스타파 알리(1541-1600)는 59년의 생애 동안 커피와 커피하우스에 관한 논고를 면밀히 따랐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의 저서 『메바이뒨-네파이스 피 카바이딜-메자리스(Mevâidü'n-nefâis fî kavâidi'l-mecalis)』에서 ‘커피하우스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장은 이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최초의 커피하우스에 H.960년(1552년)이라는 날짜를 제시하면서, 알리(Âli)는 커피나 커피하우스에 반대하지 않은 것 같다.
p. 44


그는 ‘선한 사람들이 마시는 다양한 음료 중 묘약’이라고 묘사한 커피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예멘 커피는 신이 사랑한 사람인 셰이크 하센 에스-샤질리(Sheikh Hasen eş-Şâzilî)의 시선에 행운이 깃든 덕분에 곧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고 처음으로 언급했다. 알리(Âli)에 따르면, 커피하우스는 데르비쉬와 현인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가난한 사람들이 피난처를 찾는 장소였기 때문에 유용했다. p. 44

커피하우스와 커피 애호가들의 걷잡을 수 없는 증가는 종교계와 정치권에 불편을 초래했다. 페체비(Peçevî)에 따르면, 종교 광신자들은 곧 “대중들이 커피하우스를 좋아하게 된 이후, 더 이상 모스크(mosque, 회교 사원)나 마스지드(masjid, 회교 성원)를 방문하는 사람은 없다!”라는 말을 퍼뜨리기 시작했고, 설교자들은 모스크에서 커피와 커피하우스에 반대하는 설교를 했다고 한다. 그들은 커피가 종교에 의해 금지되는 무프티(mufti, 회교 법전 전문가)의 파트와를 간청했고, 심지어 일부는 “주점에 자주 가는 것이 커피하우스에 가는 것보다 낫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p. 45

“우린 커피나 커피하우스 때문에 죽겠다”라는 사실은 진실을 반영한다. 사회생활의 단조로움과 지루함에 좌절한 대중은 커피나 커피하우스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비록 무라드 3세(Murad III)의 통치 기간 동안 증가하는 압력으로 인해 큰 커피하우스들이 문을 닫았지만, 분리된 출입구가 있는 지하 커피하우스들은 외딴 지역과 상점들 뒤쪽에 문을 열었다; 이들은 경찰관들과 경찰서장에게 보상을 주는 한 편안하게 운영되었다. 언제 누가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실상 모든 오래된 커피하우스에 걸려 있는 패널에 있는 유명한 커플렛을 포함하는 스탠자(stanza, 4행 이상의 각운이 있는 시구)는 이러한 장소들이 사회 생활에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Mademki gelmişiz köhne cihâne
Derdimizi çeksin şu vîranhâne
Gönül ne kahve ister ne kahvehane
Gönül ahbâb ister kahve bahane
이 낡은 세상에 태어났으니
이 허름한 집은 우리의 슬픔을 덜어내리라.
마음은 커피도 커피하우스도 원하지 않아.
마음은 오직 친구를 원하고, 커피는 그저 핑계일 뿐
p. 45 – p. 46
타흐미샤네
전설에 따르면 아라비아 반도 밖으로 커피 씨앗이나 커피 묘목을 가져간 최초의 사람은 부단(Budan)이라고 불리는 인도인 하지(hajji, 메카 순례를 마친 남자 이슬람교도)였다고 한다. 1661년 암스테르담으로 가져온 커피 식물은 곧 네덜란드 식민지로 옮겨졌고, 1658년과 1699년에 각각 스리랑카와 자바에서 커피 재배가 시작되었다. 그 다음으로는 수마트라, 발리, 티모르, 술라웨시, 그리고 1718년 현재 남미의 네덜란드령 기아나(수리남)이다. 프랑스는 1714년에야 커피 묘목을 얻을 수 있었고, 몇 년 안에 그들은 마다가스카르 동쪽에 있는 부르봉 섬에서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포르투갈이 네덜란드로부터 사들인 브라질의 기후와 토양이 커피 농업에 이상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브라질은 18세기 후반에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19세기에는 브라질 커피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p. 58
생명의 물
커피가 이스탄불에 소개되었을 때, 벨리이(Belîğî,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이스탄불 출신 디반 시인)가 쓴 가젤에서 모든 커플렛(couplet, 2행 연구로 쓰인 시)의 끝에 ‘커피’라는 단어를 반복하면서 커피에 대한 정당성을 외쳤다. 그러나 그는 이집트, 알레포, 다마스쿠스를 거쳐 아나톨리아에 도착하기 전에 이 장난스러운 열혈 미인이 와인잔을 차지한 것에 화가 났다; 그는 커피를 그녀(커피)의 고객들을 자극하는 데 능숙한 매춘부에 비유했다. p. 61

다른 시인들 역시 커피를 생명의 물(âb-ı hayat)에 비유했다; 이 비유를 의심하는 사람들에 대한 증거로서, 그런 시인 중 한 사람은 커피의 어둠(검은 색깔)을 지적했다. 커피를 사랑하는 시인 레비브(Lebib)는 커피의 고향 예멘을 위해 다음과 같은 구절을 썼다:

Hâkiin biten kahveye fincan oluversem
내가 하킨에서 재배한 커피 한 잔이라면 p. 63

커피와 커피하우스 둘 다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 되었다. 시인 네비(Nev’i, D. 1599)는 커피와 커피하우스가 폐지된 시기에 대해 그가 썼을 가능성이 있는 한 절에서 이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심지어 교수들도 커피를 두 잔 마시지 않고는 밤에 책을 읽거나 아침에 강의를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무흐테시브(muhtesib, 감독관)는 왜 무슬림이 커피를 마시면 이단자가 되는 것처럼 커피 판매자들을 적대적으로 대했을까?

Muhtesib kahve-fürûşa ne ta’addî eyler
Yoksa kâfir mi olur içse Müselman kahve
İrte derse çıkamaz gice kitâba bakamaz
Eğer içmezse müderris iki fincan kahve
왜 감독관은 커피 판매자들을 억압하는가?
무슬림이 커피를 마시면 이단자가 되는가?
교수는 낮에 수업을 하거나 밤에 책을 볼 수 없다.
그가 커피 두 잔을 마시지 않는 한 p. 64
튀르키예 커피 문화
커피 컵
튀르키예의 커피 문화를 반영하는 모든 단어들은 화려하게 아름답다: 카흐베(kahve), 디베크(dibek), 제즈베(cezve), 텔베(Telvé, 커피 찌꺼기), 핀잔(fincan),... 아랍어에서 가져와 변형되지 않고 사용되는 핀잔(fincan, 컵)이라는 단어는 튀르키예어에서 외국어로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소리와 함축적 의미를 통해서 섬세한 감성과 풍부한 문화를 반영한다. 이 단어의 두 번째 음절인 ‘잔(can, 정신, 영혼을 의미)’은 커피의 화학적 성질에 있는 묘약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 묘약은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건강을 선사한다. ‘핀잔(fincan)’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마다, 여러분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손잡이가 있건 없건 간에 김이 나고 거품이 많은 튀르키예식 커피로 가득 찬 컵이다. p. 81
튀르키예 커피 문화
궁전의 커피 세리머니
튀르키예 커피 문화
Harem’de kahve töreni(하렘의 커피 세리머니)
커피 반대자들은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커피하우스를 폐쇄하도록 정치 권력에 촉구했다. 그러나 커피를 음료로 금지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는데, 이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들은 이미 커피 애호가가 되어 하루를 커피로 시작했고,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아침에 먹는 음식을 ‘카흐베 알트(kahve altı, under coffee, 커피 아래)’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단어를 줄여서 튀르키예어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단어 중 하나가 된 카흐발트(kahvaltı, breakfast, dejeuner)라는 단어는 커피가 어떻게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되는 부분이 되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p. 89

언어, 종교, 또는 사회 계급에 대한 어떠한 차별도 없이, 이 커피하우스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커피하우스를 선호한다. 일부 커피하우스 외부에는 짚 매트가 깔린 벤치가 있다. 야외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싶어하는 고객들은 이 벤치에 자리를 잡는다. 음악가들은 수많은 커피숍에서 연주하고 노래한다. 예의바른 손님들 중 일부는 커피숍에 도착하면 지인들에게 커피를 권한다.

“만약 당신이 커피숍에 앉아 있고 누군가가 당신 옆에 앉아 있다면, 당신은 그에게 커피를 주문해 줘야 한다; 이것이 오스만주의의 본질이다!” p. 91
가정 생활의 커피
예비신부에게 청혼하는 것에서부터 결혼식에 이르기까지, 커피는 한때 결혼 의식의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p. 106

금욕적인 겸손의 표현으로 “우리의 쓴 커피 한 잔 드십시오.” 또는 “우리의 쓴 커피 한 잔 드시겠습니까?”라는 말이 초대 수단으로 종종 사용되었다. p. 109

커피 한 잔은 40년의 우정을 약속한다”는 유명한 속담은 과장된 감사의 표현이며, 손님을 맞이할 때 커피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p. 110
커피 중독
튀르키예 커피 문화
커피를 “에흘-으이르판 셰르베티(ehl-i irfan şerbeti, 지혜의 사람들의 셔벗)”라고 부르면서, 대부분의 커피 애호가들은 담배, 물담뱃대 또는 코담배에 중독되어 있으며, 숙련된 대화 전문가들이다. 그들의 즐거움은 일단 ‘커피와 담배’가 합쳐지면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진’ 것이다.
p. 115
화로와 애쉬 커피
튀르키예 커피 문화
Üşüyorsan eşiver mangalı, eş, eş de ısın
추우면 화로를 쿡 찌르세요;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쿡 찌르세요

집게로 화로의 재를 찌르는 것은 옛 이스탄불에서 겨울 동안 일상 생활의 일상적인 취미 중 하나였다. p. 130

튀르키예 커피 문화
커피 부족
  • 튀르키예 커피 문화
  • 튀르키예 커피 문화
Kahve kuvvet kalbe, dermandır dize
Kahve ruha neşvedir, ferdir göze
Şairim ben isterim bir caize
Kahve lütfet varsa imkânın eğer

커피는 심장에 힘을 주고, 무릎에 활력을 준다.
커피는 영혼에는 기쁨을 주고, 눈에는 빛을 준다.
나는 시인이다. 찬미의 시를 위한 선물을 원한다.
만약 당신에게 방법이 있다면 우리에게 커피를 주세요
커피 컵에 담긴 운세
어떤 사람들은 진정으로 커피 운세를 믿고 커피를 마실 때마다 좋은 소식을 듣기 위해 운세를 읽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운세를 듣는 것에 상당히 당황해했다. p. 153

튀르키예 커피 문화
Kahve Telvesiyle Keşf-i İstikbal’de semboller listesi
(커피 찌꺼기로 미래를 보는 상징 목록)
옛 이스탄불의 커피 광경
모든 길과 거리에서 커피하우스를 만날 수 있었는데, 사실 대부분의 커피하우스는 파빌리온(pavilion, 공원이나 큰 정원에 높게 장식된 건물)으로 지어졌으며 경치가 좋은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반면에 시골의 커피숍은 거대한 나무와 포도 덩굴 밑에 세워졌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이 장소에 모여 체커나 체스를 두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고 수다를 떨곤 했다. 겨울 몇 달 동안 대중의 이야기꾼(meddah, 메다)과 마술사들은 커피하우스에서 그들의 재능을 발휘했는데, 일부는 커피 한 잔과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만 자주 방문했다. p. 161
지역 커피하우스
튀르키예 커피 문화
Bir mahalle kahvesi (동네 카페)
커피하우스가 당국의 통제 밖에서 형성된 자연스러운 사회 구조를 반영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동네 커피하우스,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커피하우스, 부두의 뱃사공과 짐꾼들이 가는 커피하우스, 각지의 요리사와 마부들이 가는 커피하우스, 커피 애호가들이 가는 커피하우스, 대중 이야기꾼이나 세마이(Semai music은 6/8 박자로 구성된 오토만 터키 음악의 한 유형이다. 이것은 또한 Sama’i 또는 usul semai로 알려져 있다. 이 형태와 박자는 완전히 다른 Saz Semaisi와 혼동되기 쉽다. 이것은 10/8 박자로 구성된 세 개에서 네 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진 악기 형태이며, usul aksak semai(터키어로는 broken semai)이다) 가수들이 가는 커피하우스, 그리고 동네 마을 사람들과 은퇴한 사람들을 위한 커피하우스 등이 다양한 사회 집단과 직업군이 서로 교류하고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p. 180

지역 커피하우스로 불리는 장소는 과학 아카데미 (Encümen-i Dâniş) 형태였으며, 그들은 과학과 교육 기관 또는 사회 복지 단체로 활동했다. 그들은 대중 간의 유대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를 강화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p. 183
크라아트하네
튀르키예 커피 문화

고객이 읽을 수 있는 신문과 잡지가 있는 넓고 깨끗하며 잘 꾸며진 커피 하우스

커피하우스는 생활이나 집을 정리하는 방법, 친구를 사귀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의 안식처이다. 한마디로 현실을 도피하는 이들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일상의 고민과 위로할 수 없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분위기, 기회가 주는 지인들을 만난다. p. 185

창가에 모자를 놓거나, 다리를 아래로 당기고, 디반 위에 눕거나, 테이블을 쾅쾅 두드리며 “커피 한 잔 가져와!”라고 소리치거나, 큰 소리로 말하는 등의 예절에 어긋나는 행동은 볼 수 없었다. p. 190
커피하우스에서의 엔터테인먼트
음악이 커피하우스에 들어온 시기를 추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예니체리 커피하우스는 처음부터 음악 공연을 펼쳤고, 예니체리 군단이 해체된 후(1826), 이 커피하우스는 세마이 카흐베레리(semai kahveleri)뿐만 아니라 소방관이 운영하는 "찰그르 카흐베레르(çalgılı kahveler, 뮤직 카페. 음악이 있는 커피하우스)로도 알려진 아슈크 카흐베레리(âşık kahveleri)로 변모되었다. 아나톨리아(Anatolia)와 로우멜리아(Roumelia)에서 이스탄불에 도착한 튀르키예 음악의 민속 시인 가수(âşık, 아슈크)는 쳄베르리타쉬(Çemberlitaş) 근처의 타부크파자르(Tavukpazarı) 커피하우스에서 현지 음악가들과 함께 모여 "시 대결(atışma, 아트쉬마)로 알려진 노래 경연 대회를 개최하여 테스트를 통과했다. p. 197
문예 커피하우스
튀르키예 문학에서 현대 시의 공동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야히아 케말은 휴전 기간 동안 다륄퓌눈(Darülfünun)에서 학생들과 함께 누루오스마니예에 있는 이크발 크라아트하네시(İkbal Kıraathanesi)에 정착했다. 커피하우스는 그의 지도 아래 출판된 데르가흐(Dergâh) 잡지의 본부로 사용되었다. 젊은 시절 파리에서 보낸 10년 동안, 그는 수플레(Soufflet)와 바셰트(Vachette) 같은 커피하우스에 자주 들렀고, 이들 커피하우스에서 즐겼던 문예 한담의 마지막 날들의 즐거움을 이스탄불로 가져갔다. p. 209

그의 소설 『참르자다키 에니쉬테미즈(Çamlıca’daki Eniştemiz, 참르자에 있는 우리 삼촌)』에서 압뒬하크 쉬나시 히사르(Abdülhak Şinasi Hisar)는 음식에 대한 오래된 관습과 습관을 유지하는 데 미친 미식가 삼촌과 그의 가족들이 잠옷을 벗지 않고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아침 커피를 마신다고 썼다. p. 218

튀르키예 커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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